숲에 둘러서서 | around the forest
Jan 2020
Sound Performance 25min.
@RTA 탈영역우정국 | Post Territory Ujeongguk
그들은 숲에 둘러서서 있었습니다. 그들이 선 길 건너편에는 빌라 한 채의 출입구가 있었는데, 그 옆에
세워진 주차금지 표지판 언저리일까하는 어둑한 곳으로부터 한줄기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뒷편에 벽돌담벼락 저쪽 끝 둥그렇게 돌아가는 코너에 놓인 돌무더기 속에서도
한줄기 귀뚜라미 소리가 그 소리에 응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째르, 째르, 째르르하고. 그들 중에 하나는 그 귀뚜라미 소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오로라처럼 하늘저편에서 하강하는 도심고속화도로의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를 눈치채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 문득, 골목 저편에서, VROONG 배달 오토바이가 한 대 나타나 부다다다다 하고, 이 작은 오케스트라를
흔들며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다지 놀라진 않았습니다. 귀뚜라미들도 사실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의 합주를 이어가고 있었지요. 두번째 귀뚜라미가 있는 모퉁이 벽돌담 안쪽에는 감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그 위에, 또 그 반대편 골목길 어딘가 빌딩 위에 몇마리의 새들이 짹짹거리면서 이리 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그것을 미쳐 간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새들도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함께 소리내고 있었던가 봅니다. 귀뚜라미도 새들을 듣고 있었던가 봅니다.
오토바이도 그들을 보고 있었고, 벽돌담도 나무를 만지고 있었고, 감나무도 안개를 듣고 있었던가 봅니다.
숲은 숲에 둘러서서 있었습니다.
숲에 둘러서서 from dianaband on Vimeo.
사진. 신병곤